2020년도 예산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마부작침]이 골라 낸 국회 예산 심사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다.

불법, 불용, 불심사, 불논의. 예산 심사에 주요하게 고려할 사항들이 누락됐다는 취지로 '불不-'을 붙였다. 문제가 중복된 사업도 있었으나 가장 주요한 폐해를 중심으로 분류했다

지키지 않은 원칙: ① '불법' 예산

창업인프라 지원사업-지식산업센터 건립. 2020년 신규 사업지 7곳에 대한 예산이 편성됐다. 각 사업지에 우선 초기 설계비 10억 원씩을 배정하지만 이후 4년에 걸쳐 센터 건립비의 최대 70%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거웠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예산소위원회 회의
2019년 11월 7일
지동하 전문위원
창업 인프라 지원사업입니다. 그래서 지식산업센터 건립사업은 46쪽까지 쭉 있습니다. 같이 설명 드리겠습니다.
김기선 소위원장
그것 설명하지 마시고 차관이 설명하세요. 개별적으로 쭉 해 보세요.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차관
먼저 이 검토안 기준, 원칙을 명확히 해야 될 것이 저희들이 작년 결산 할 때 지식산업센터에 대한 그러한 위원님들의 지적이…… 또 부지 확보라든지 이러한 미흡한 부분을 그냥 시작함으로써, 예산을 편성함으로써 실집행도 안 되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이 돼서 이번 18년 결산할 때 ‘사전에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부지 확보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할 것’ 이렇게 지적사항이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검토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건립부지가 사전에 확보의 가능성이 내년 중에 있는지 여부, 두 번째는 과거 동일한 지역에 지원한 실적이 어땠는지 두 가지를 근거로 검토했고요. 또 하나는 이것이 1차년도에 설계비만 들어가면 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17년 이후에는 7억 이렇게 되는 게 아니고 10억씩 일률적으로 반영하는 걸로 검토를 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런 의미로 지금 제가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중략) 전주 덕진은 현재 덕진구에 건립 중인 센터가 있는데 동일한 번지수에 옆에 같이 동일한 건물에 추가로 센터를 건립하고자 한다는 계획이라서 이 부분은 역시 마찬가지로 판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기선 소위원장
그러면 그렇게 하고 나머지는 중기부가 제시한 대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측은 건립부지가 사전에 확보돼 있는지, 혹은 2020년 중에 확보 가능한지, 또 과거 동일한 지역에 지원한 실적이 있는지를 근거로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국회에서 지적해 왔던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신규 신청한 곳 중 전북 전주에 대해 중기부는 "동일한 번지 바로 옆 동일한 건물에 추가로 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중기부 예산 편성 지침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기선 소위원장은 "중기부가 제시한 대로 결정하겠다"며 논의를 마무리했다.이렇게 정리된 줄 알았던 전북 전주, 최종 예산에서 다른 지역을 제치고 신규 사업지 7곳에 포함됐다.

현장에 가보니 완공을 앞둔 지식산업센터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이 새로 지을 센터 부지였다. 전주에만 이런 센터가 3곳, 앞으로 500억 원 가까운 국가균형 특별회계 예산이 투입된다. 지역구 의원은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이었다.지자체 공무원은 "정 의원이 4+1 협의체 합의 국면에서 협상 카드로 해당 예산을 잘 관철시켜 줬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균형 발전 예산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취재진이 수 차례 질의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행정안전위 예산소위원회 회의
2019년 11월 7일
조의섭 수석전문위원
재해위험지역 정비사업 중에 첫 번째 내역사업으로 재해위험지구 정비 사업입니다. 첫 번째로 경기도 구리시 아천빗물펌프장 노후배수펌프 교체 예산 8억 원 증액 의견이고요.
김계조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
경기도 구리시 아천빗물펌프장 이 부분은 재해위험지구를 정비하려면 재해위험지구로 지정이 돼야 됩니다, 자연재해대책법상. 그런데 이 부분은 지구가 지정이 안 돼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예산 투자하기는 어렵다 그런 내용의 수용 곤란이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전부 다 수용합니다.
홍익표 소위원장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의견을 냈으니까, 구리시 부분은 정부 의견을 제가 수용하겠고요.
이번에도 관련 상임위 예비심사. 경기도 구리시 아천빗물펌프장 지원 예산에 대해 행정안전부 측은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돼야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면서 수용 곤란하다고 밝혔다. 홍익표 소위원장은 "정부 의견을 수용하겠다"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상임위 결론과 달리 최종 예산에 빗물펌프장 예산 4억 원이 반영됐다.

정부가 곤란하다고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법에 따라 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돼 있어야 예산 지원이 가능한데 근거가 없다는 것. 구리시는 2005년 재해위험지구에서 해제됐다. 해당 지자체 담당자는 "절차를 이행해야 쓸 수 있는 예산이라 이제 지구 지정 절차를 밟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예산부터 받아 놓고 사전 절차를 뒤늦게 처리하려 하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다. 이에 대해 윤 의원 측은 "예산 편성 과정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적은 없다"라고 해명했다.

2020년 국회발 신규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2조 725억 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특별회계로 예산을 편성하려면 근거 법령이 먼저 의결돼야 하지만 국회는 예산부터 통과시켰다. 예산부수법안인 '소재부품장비예산 특별법'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건 이로부터 17일 뒤인 지난해 12월 27일, 그 동안은 '불법' 예산이었다.이렇게 예산 편성 원칙과 관련 법령을 어기면서 편성된 '불법 예산'은 79개 사업, 4조 7천 635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사업성 낮은데도 예산 편성... 왜?: ② 불용 예산

국토교통위 예산소위원회 회의
2019년 10월 30일
유상조 전문위원
위원장님, 도로국 예산이 지금 총 사업이 224개 사업에 해당이 되거든요. 그래서 이것을 고속도로 쪽하고 일반국도로 나눠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고속도로 조사설계 및 건설 관련해서는 연번 1번부터 32번까지 해당이 되겠는데요. 주요 내용을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략) 그리고 영일만 횡단, 8번의 영덕-삼척이 수용 곤란입니다.
김석기 소위원장대리
차관님, 7번 영일만 횡단대로……
윤영일 위원
왜 영일을 들먹거려요.
김석기 소위원장대리
이게 동해안고속도로에서 포항-영덕 간 중에서 영일만에 대한…… 이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지요, 국토부에서도?
김경욱 국토교통부제2차관
충분히 검토해 볼만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다만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 2017년 결과가 통과를 못 하게 나왔기 때문에 저희 입장으로서는 예산 반영하기가 쉽지가 않은 사항인데……
김석기 소위원장대리
그런데 포항 지역은 사실 지진 피해 때문에 특별법 제정 얘기도 나오고 지금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이런 문제를 특히 경상북도에서도 가장 중점 핵심사업이라 그래서 강하게 요청을 하는데, 이것은 내년도 설계 추진을 위해서 100억 원을 증액시켜 달라는 내용 인데 반영을 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검토를 해 주시지요.
국토교통부제2차관 김경욱
예, 검토는 하겠습니다마는 국가재정법 사항이라서 저희가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경북 포항 영일만을 가로지르는 대로, 영일만 횡단대로 사업. 사업 적정성이 낮다는 조사 결과 때문에 편성이 어렵다고 국토교통부 측이 답했지만 김석기 의원은 "포항이 지진 피해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국토부 측은 재차 "국가재정법 사항이라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고 그렇게 정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최종 예산에 포함됐다.[마부작침]이 2018년, 2019년 국회 예산심사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 '영일만 횡단대로' 사업은 2020년에도 또 다시 설계비 10억 원이 배정됐다.

2016년부터 5년 연속, 합계 70억 원이 배정됐으나 단 1원도 쓰지 못했다. 설계비 집행을 위한 전제인 본 사업을 기획재정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반대해 예산이 계속 묶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과 2011년 정부의 타당성 조사나 2017년 KDI의 사업성 재검토 결과 모두 경제성이 낮다고 나왔고 2019년 초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 선정에서도 탈락했다. 그런데도 계속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이다. 박 의원은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 예산에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마부작침]은 이처럼 사업성이 낮거나 예산을 줘도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편성한 예산을 '불용 예산'으로 분류했다. 예산 편성이 근본적으로 국가 가계부를 꾸리는 작업인 만큼, 사업성 평가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불용 예산'은 15개, 약 500억 원 규모였다.

의원님 예산은 '뭉텅이 프리패스': ③ 불심사 예산

국토교통위 예산소위원회 회의
2019년 10월 28일
강훈식 위원
국토부의 도로병목지점 개선사업하고 위험도로 개선사업이 정말 국민들한테는 직접적으로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인데요. 이런 게 바로 확장적 재정에 중요하다, 그리고 어쨌든 국민들이 느낄 때 ‘아, 확장 재정 하니까 삶이 좋아졌다’ 이런 부분입니다. (중략) 도로병목지점개선사업 수정 계획 지난 8월에 확정한다고 그랬는데 아직 장관님 결재 못 하셨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예, 아직 못 했습니다.
강훈식 위원
힘이 될 수 있도록 빨리 수정계획을 결재해 주셔야 저희…… 제가 예결위원이기도 한데요, 내년도에 필요 사업으로 이렇게 될 수 있으니까……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
예, 알겠습니다.
강훈식 위원
저희도 필요한 것들은 서면으로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도로병목지점 개선'이라는 이름의 사업. 18곳에 각각 10억 원씩 지원하는 게 확정됐다. 어느 구간인지, 왜 그 구간 사업에 예산이 필요한지 질문도, 답변도 없다. 상임위 예비심사, 예산결산특위 본 심사를 거치는 동안 '도로병목지점 개선'이 언급된 건 지난해 10월 28일 강훈식 의원이 질의한 단 한 번뿐이었다.국가하천 정비, 전통종교 문화유산보존 등 해마다 으레 편성하던 사업의 명분과 필요성만 심사하고 정작 그 예산을 받을 곳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설명이 빠진 뭉텅이 심사 예산, [마부작침]은 이를 '불심사 예산'으로 분류했다. 이런 '불심사 예산'은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 예산'이 되기 쉽다. 2020년 예산에서는 48개, 463억 5800만 원 규모로 분석됐다. 절반 이상이 국토교통위원회 소관 사업이었다.

어디에도 흔적 없는 깜깜이 예산: ④ 불논의 예산

심사는 했다는 데 어디에도 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기록 전무 '깜깜이 예산', [마부작침]은 이를 '불논의 예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각 상임위 예비심사, 예결위 본 심사에 이르기까지 회의록을 작성해 남기는 과정 어디에도 언급조차 없었다가 확정된 사업이다. 지역 민생을 위한 필수 예산인지, 정치적 거래 수단인지 가늠할 근거가 없는 이런 '불논의 예산'은 104개, 1255억 원 규모로 분석됐다.국회 예산 심사의 투명성을 위한 장치인 예산회의록에 적잖은 규모의 사업들이 단 한 번 거론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불법', '불용', '불심사', '불논의'. 2020년 예산 심사에도 부족했던 이 네 가지, 4불은, 이런 국회에 나라 살림의 감독을 맡긴 국민들의 '불안'으로 이어진다.